휘청거리는 오후
나는 TV드라마를 안본다. 안본지 5년? 6년은 넘은 것 같다. 다른 것보다도 시간이 너무 들어 안본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번은 한번에 1시간씩 소비해야하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 안본다. 그래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본연의 습성이라-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핵심은 이야기에 있을 것 같다- 나도 드라마같은 게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가장 쉽게 찾아지는 게 박완서 선생의 소설이다. 너무 통속적인 평인지는 모르지만, 박완서씨의 소설은 재미넘치는 드라마를 한편한편 시간가는지 모르고 보는 듯한 즐거움과 재미가 있다.
처음 시작은 약간 지루하였다. 딸 많은 집이며, 좋아하는 남자를 두고 조건에 맞는 남자와 맞선을 보는 장면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보았던 클리셰다. 교사 일을 하다가 속세의 셈을 따져 전업한 아버지의 설정도 그렇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일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다만 오로지 돈을 좇아 시집간 첫딸이 불행해진다던가, 결혼보다 먼저 몸을 허락한 둘째딸이 영락없이 가난의 나락에 떨어진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70년대의 시선 그 자체인것 같아 약간 우습기도 하고 전형적인 것 같기도 하다. 요새야 돈만 보고 가도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그런거겠지? 하긴 내가 그사람들 속을 안 들여다보아 모르긴 한다만-
그 시대의 여자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도 많다. 허성씨의 부인인 민여사가 남편에게 함부로 말했다가 한대 맞는다던가, 허성씨가 부인과 다투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매춘녀를 사기도 하고 둘째딸 우희는 돈한푼 없는 신랑에게 시집가지만 남편의 위세에 짓눌려 신혼여행에서 전화한통 마음대로 못한다. 시집가서 고생을 옴팡 뒤집어 씀은 물론이다. 아참, 허성씨는 사랑하는 여자의 순결을 왜 못 지켜주냐며 자기는 그러기 위해 차라리 노는 계집을 살망정 그 순결에 손은 안댔다고 자랑도 한다. ㅎㅎㅎㅎ
최근의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옛날 여성의 지위를 두고 '참으로 미개했었다'며 분개하는 글을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미개한' 성인식 수준을 갖고 있는 거냐면... 나는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대상, 그때의 시대상은 이러했었더라고 거울 비추듯 비춰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신혼여행 간 우희가 친정에 전화를 하려하자 남편이 자기집엔 전화가 없어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너희집에도 연락하면 안된다고 윽박지르는 장면에서는 참 숨이 답답했다. 시집가서도 일방적으로 파출부 부리듯 부려지는 것도 답답했다.(다만 임신 이후로는 자유로워졌다고 했으니 임신과 출산 이후에는 자기살림 돌보느라 시집살림에서는 놓여졌기를 바란다) 차라리 헤어지지 그 많은 혼수를 해 갖고 가서도 저러고 사나!! 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 당시의 이혼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다른 선택이 없었으리라 싶기도 한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현재의 인식, 차별 그 이상의 무서운 사회적 편견이 당시의 이혼녀에게는 있었다. 이혼남과는 또 다른 대접이었다. 지금세상에야 이혼이 살다보면 겪을 수 있는 사고나 극복할 수 있는 아픔 정도이지만 70년대는 달랐다.(그러고 보면 무려 50년전이다) 옛날에 여자들이 자기 남편을 일러 '우리집 주인'이라 칭할 때가 있었다. 누가 오면 '주인은 나가고 안 계신데 무슨 일이신가요'하고 대답하는 게 점잖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이혼녀는 '주인없는 여자'가 되는 두려운 세상이었다. 평범한 여자인 우희로서는 그렇게까지 각오가 필요한 선택을 할 용기는 없었을 거다.
읽는 내내 딸들보다는 아버지 허성씨가 안되어서 혼났다. 정말 이 고생이 언제 끝나나... 읽을 분량이 점점 줄어들면서 그래 이제 좀 평안해지면서 끝나겠지 싶은데 말미로 가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의 결정이 불안하더니 정말 충격적으로 끝나버렸다ㅜㅜ 그는 결국 죽었을까, 살았을까? 끝부분으로 가면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이 꺼져가는 촛불같아서, 생명력이 강하지 않아 꼭 죽었을 것만 같다. 참으로 가엾은 생이다.
꼭 그렇게 혼수를, 생명까지 걸고서 해줘야만 했을까. 이 시대를 사는 나로서는 좀 이해가 안가기도 하지만, 본인 생각은 안그래도 마누라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별 수가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일방의 의사대로만은 안되는 거라서....
마지막 부분에 허성씨가 큰딸 초희에게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라고 일러준다. 자기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해라 하고. 시험낙방에는 과외못받고 과외 못시켜준 가난탓하고, 연애 때는 현대의 연애풍조가 이러해서, 결혼 때는 현대의 결혼풍조가 이러하니까 하고 남의 판단만 따르며 자기 주관없이 살아온 잘못을 일러준다.
그런 거에 비하면 나는 참으로 내 주관있게(?) 살아온 것 같다. 삶의 모든 주요한 결정을 내가 다 했고 스스로 감당하기를 원했다. 처녀시절에 엄마는 내가 부잣집으로 시집가길 은근슬쩍 바랬는데, 나는 완강히 거부하고 모든 선택을 다 내가 했다. 그러길 참 잘한 것 같다. 안 그랬으면, 내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면 나는 못 견딜 성격이다. 근데 그러기 전에 내 자기의식을 좀 많이 성장시켜놓지 못한 점은 아쉽다. 성인이 되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기 전에 나 자신을 좀 많이 성장시켜놓을 걸, 청소년 시절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의미한 방황을 한 것이 아쉽다. 그래도 순전히 내 손으로 만든 작고 아담한 내 삶이 아직은 좋다.
뒷쪽에 작가의 작품목록이 주루룩 나와있어 참 좋다. 따로 찍어놓았다가 이야기가 고플 때 한권 한권 읽어나가야겠다. 장차 읽을 만한 책이 많이 대기하고 있다는 게 다작하는 작가를 좋아할 때의 장점중 하나다.